시계이야기

[시계의 역사] 1.한국

  • 작성자TMwatch
  • 등록일2004.06.08 17:28
  • 조회509
자료출처 [http://my.dreamwiz.com/bbbaytm2/]

한국에서는 어떤 시계가 먼저 발달하였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에 물시계 사용에 관한 기록이 있고, 신라 때의 해시계 파편으로 보이는 유물이 경주박물관에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시각을 알리는 큰 종이 충목왕 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434년 장영실(蔣英實)이 세종의 명으로 물시계의 일종인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었다. 이것은 자동시보장치가 달려 있어 사람들이 지키고 있지 않아도 스스로 시각을 알려주는 정교한 시계였다. 3단의 물통으로 짜여진 자격루의 마지막 단계에서 잣대가 물을 따라 올라가 일정한 높이에 이르면 미리 장전해 둔 쇠알이 굴러 떨어지면서 종. 징. 북을 울려주게 장치된 자동물시계였다. 또한 시계 이상의 정교한 천문장치를 겸한 장영실의 옥루(玉漏)가 있었다. 이 밖에도 세종 때에는 여러 가지 다른 시계가 제작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행루(行漏)라는 휴대용 물시계도 있었다.

또 해시계로는 앙부일구(仰釜日晷). 현주일구(懸珠日晷). 천평일구(天平日晷). 정남일구(定南日晷)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앙부일구는 중국에서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세종 때에 조선에서 제작되기 시작하여 그 뒤 널리 보급되었고 일본에까지 그 영향을 끼쳤다. 17세기 이전의 유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뒤의 것으로는 여러가지 형태의 앙부일구가 남아 있다. 앙부일구의 내면에는 시각선 이외에도 13줄의 위선이 그려져 있어 절기를 나타낸다.

이러한 해시계와 물시계 이외에도 세종 때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별시계로 작동하게 만든 시계였다. 서양식 해시계로는 1636년(인조 14) 이천경(李天經)이 만든 대리석제의 지평일구(地平日晷)의 유물들이 지금도 남아있다.

한국에 기계시계가 처음 전래된 때는 1631년 (인조 9)인데, 정두원(鄭斗源)이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자명종을 가지고 들어온 데서 유래한다. 당시의 자명종은 지금의 자명종과는 달리 정해진 시각에 종이 규정된 대로 울리는 그런 시계를 말하였다. 이 기계시계는 한국 시계역사에 두 갈래의 영향를 주며 시계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한 가지는 서양식 자명종을 그대로 만들려는 노력이 활발해진 것이고, 또 한가지는 자명종의 기계장치를 전통적인 자동 물시계 장치와 결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시계를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전통적인 수력을 이용한 자동장치 대신 자명종의 기계장치를 채용한 천문시계로는 혼천시계(渾天時計)를 들 수 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 시계는 길이 약 120cm, 높이 98cm, 나비 52cm의 나무상자 속에 설치되어 있다. 시계부분과 혼천의 부분의 둘로 구성되었는데, 시계부분은 2개의 추를 운동시켜 움직이게 되어 있고 그에 따라 혼천의가 움직이게 된다. 시각에 따라 시패가 창문에 나탄고 종이 시각수만큼 울리게 된다.

이 천문시계는 1669년 (현종 10) 관상감의 천문학자 송이영이 만든 것이다. 같은 해에 함께 천문학자로 있던 이민철(李敏哲)도 혼천시계를 만들었는데 이민철의 것은 자동수력 장치를 사용한 것이었다. 서양식 자명종을 그대로 만들려는 노력으로는 1723년 (경종 3) 왕명으로 만든 문신종(問辰鐘)을 들 수 있다. 낮과 밤 어느 때나 시간을 알 수 있는 이 시계는 청(淸)나라에서 진하사(陳賀使)가 가져온 것으로, 임금이 관상감에 보내 그대로 복제품을 만들도록 명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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